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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아방가르드의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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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릭 피스커의 돌연 사임 - 드로리언과 테슬라와의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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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자동차로 유명한 피스커 자동차의 창업주인 헨릭 피스커가 회장직을 돌연 사임했다는 소식입니다. 사임의 이유는 사업 전략에 있어 경영진과의 마찰 심화라고 이메일 발표에 간략히 언급되었으며, 이번 사임과 무관하게 회사는 앞으로도 전략적 제휴와 투자 유치 활동을 지속해나갈 것이라 하였습니다.


애스턴 마틴 DB9, 밴티지, BMW Z8 등의 슬릭하고 멋진 스포츠카의 디자인을 그려낸 자동차 디자이너 헨릭 피스커는 2004년 미국 캘리포니아에 자신의 이름을 딴 자동차회사를 설립합니다. 이 때만 해도 피스커 자동차는 BMW 6시리즈, 벤츠 SL 등을 개조하여 헨릭 피스커 특유의 디자인 센스로 리터치한 차들을 고가에 소량생산하는 회사였습니다. 그러던 피스커는 퀸텀 테크놀로지와의 전기차 기술 제휴에 성공하였고, 친환경차에 대한 관심이 높은 시대에 실리콘 밸리와 정부에서의 지원에 힘입어 원래 가솔린 4인승 수퍼카로 태어나야 했을 프로젝트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전기차로 급선회하게 되었습니다. 파워트레인을 퀸텀 테크놀로지가, 디자인을 피스커가 맡아 태어난 차가 바로 카르마입니다. GM제 4기통 2리터 엔진과 전기모터를 결합한 카르마는 순수 EV모드 항속거리 80km, 최고시속 200km, 0-100km/h 6초의 지금껏 불문율이었던 "친환경차는 못생기고 느리다"는 편견을 대차게 깨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테리어도 인위적 환경파괴를 일으켜 생산된 것이 아닌 친환경 소재만을 아낌없이 사용해 진정한 의미의 그린카 역할에 충실했습니다. 하지만 헨릭 피스커는 사업에 들어갈 자금 규모를 과소평가하여 일을 크게 벌이게 됩니다. 피스커가 생산을 위탁한 핀란드의 코치빌더 발멧은 규모가 작고 단가가 비싸서 고가의 소량생산 자동차의 생산에 적합했지만, 피스커는 대량생산을 꿈꿨기에 곧 수요보다 턱없이 부족한 공급과 비싼 단가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카르마 출시에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는데도 불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배터리 결함 문제로 리콜에 들어갔으며, 허리케인 샌디 때문에 300여대의 카르마가 고철덩이가 되어버리는 등 악재가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피스커는 투자금 유치를 위해 현재 중국 지리 등의 회사와 인수합병을 추지하고 있지만, 기술유출을 꺼리는 미국 정부의 반대와 섣부른 투자의 위험을 경계하는 중국 측 반대의견 심화로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이런 헨릭 피스커의 쓸쓸한 말로는 여러 모로 드로리언을 떠오르게 합니다. 존 드로리언 또한 GM에서 폰티악 파이어버드, GTO를 성공시키며 젊은 나이에 GM 부회장에까지 올랐지만, 보수적 거대기업 GM의 모습 아래 자신의 모습에 환멸을 느껴 회사를 박차고 나와버립니다. 드로리언은 이후 자신의 이름을 딴 회사를 꿈꿨지만, 땅, 공장, 인력 등 필요한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운좋게도 당시 영국이 북아일랜드의 실업률을 타파해보고자 자동차 산업을 유치하려던 차에 드로리언에게 관심을 가졌으며, 공장부지와 세금감면 등 파격적인 지원을 해주었습니다. 거기에 드로리언의 명성을 믿고 투자자들이 예상액을 넘는 규모의 막대한 투자를 해주어 "드로리언 모터 컴패니(DMC)"의 설립은 일사천리로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드로리언이 회사 설립을 결심하기 이전부터 만들어왔던 DMC-12는 개발 파트너인 로터스와 갈등을 빚으며 완성에 속도를 내지 못하였으며, 첫 차도 내지 못한 채 개발비를 탕진해가면서 영국 정부로부터 압력을 받던 존 드로리언은 이 미완성의 DMC-12를 그냥 출시해버립니다. 경쟁 모델 대비 비싼 가격과 모자란 성능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스테인레스 스틸 바디와 걸윙 도어를 갖춘 DMC-12는 처음에는 잘 팔려나갔지만, 미완성작이었기에 조립불량, 방전, 발화 등 심각한 결함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고, 곧 신뢰와 명성을 잃고 판매량이 추락하였습니다. 회사의 추락과 동시에 존 드로리언이 마약 밀수 혐의로 실형을 받아 회사의 이미지는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떨어졌으며(훗날 무죄 판결을 받긴 하지만 때는 너무 늦게 됩니다), 회사 창립 8년만에 DMC는 문을 닫게 됩니다. 정작 DMC-12가 유명해지게 된 계기인 백투터 퓨처 영화 출연은 회사가 망하고 난 뒤의 일이라는 아이러니..


이 두 회사와 달리 현재 소규모 전기자동차회사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테슬라를 살펴보겠습니다. 피스커는 디자이너로서 세계 유명 메이커에 몸담은 경력이 있었지만, 자금력이 부족하여 투자자들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반면 테슬라의 창업주 엘런 머스크는 페이팔의 성공으로 백만장자가 되어 돈은 많았지만 자동차 산업에 있어서는 지식이 부족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스커와 테슬라의 흥망이 갈린 것은 접근법의 차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헨릭 피스커는 디자이너로써 자기 고유의 아름다운 디자인을 그려낸 뒤 파워트레인을 찾는 아웃-인 접근으로 카르마를 만들어서, 경험이 짧은 신생 자동차 업체로서 개발 과정에 난항이 많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반면 엘런 머스크는 첫모델인 테슬라 로드스터를 만들 때는 충분히 검증된 로터스 엘리제를 거의 그대로 사용한 아웃-인 접근을 사용하여 개발도 순풍이었고 초기 품질 문제 컨트롤에 유리했습니다(물론 현재 모델S나 모델X의 경우 자체 디자인을 사용했지만). 피스커의 윌밍턴 공장 계획이 좌절 중인 상태인 것과 달리, 테슬라는 미국 프레몬트의 옛 GM-토요타 공장에서 모델S의 생산 계획을 확정하여 앞날이 훨씬 유망합니다. 좀 나쁘게 말하면 헨릭 피스커는 훌륭한 디자이너였지만 디자인에 욕심을 너무 부린 나머지 훌륭한 CEO가 되지 못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헨릭 피스커는 떠나갔지만 다행히 피스커는 아직 완전히 망한 것은 아닙니다. 카르마보다 아랫급인 5만~6만달러선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세단인 아틀란틱 컨셉트의 양산이 희망의 빛이 되겠지만, 윌밍턴의 옛 GM 공장에서 생산하겠다는 계획도 현재 에너지부와의 협상 결렬로 난항 상태로, 피스커의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합니다. 피스커가 21세기의 드로리언이 될지, 아니면 성공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전문 기업으로 부활할지는 피스커 경영진에 달린 몫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피스커의 가장 중요한 원동력인 헨릭 피스커 특유의 디자인을 잃었으니 만만치 않은 과제가 될 거라 생각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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