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규어는 포드를 거쳐 현재 인도 타타자동차의 산하에 있지만, 경영난과 대주주 변동을 여럿 거치면서 모기업과의 플랫폼 공용 기회가 있었음에도 80년동안 손대지 않았던 장르가 바로 SUV입니다. 재규어는 창사 이래 첫 SUV를 2016년에서야 출시시켰는데, 바로 위의 F-페이스입니다.

럭셔리 중~대형 SUV 장르 내에서 나름 국내시장 상위권의 판매량을 유지하고 있는 F-페이스. 누구나도 SUV를 만들 수 있는 시대에 어찌보면 매우 뒤늦은 후발주자인 F-페이스가 SUV로써 어떤 매력을 갖고 있을지 살펴보겠습니다. 시승 모델은 재규어 F-페이스 35t R스포츠 모델.





1. 외형
2013년 발표됐던 C-X17 컨셉트를 거의 그대로 따온 외모는 다부진 덩어리감과 강렬한 인상을 뽐냅니다. 레인지로버 벨라와 달리 차고조절식 에어서스펜션이 따로 없어서 늘 높은 지상고를 유지하고 있음에도 차가 둔해보인다는 느낌이 전혀 없습니다. 형제차인 레인지로버 벨라처럼 근사하게 숨어들어가는 도어캐치, 화려한 애니메이션의 매트릭스 LED 인디케이터 등의 기능은 없지만, 디자인 자체로도 동가격대 럭셔리 SUV들 대비 존재감이 결코 떨어지지 않습니다. 높은 벨트라인과 더불어 얇게 뽑아낸 사이드 윈도, F-타입 스포츠카의 것을 본딴 테일램프 등의 디테일은 세단형인 XF보다도 오히려 스포티해보입니다.

255/55R19 타이어에 19인치 5스포크 휠의 조합. 19인치 휠타이어가 비교적 작아보일 정도로 휠하우스가 빵빵합니다. 상위옵션으로 22인치 휠타이어도 준비되어 있을 정도니..

2. 인테리어
대단히 화려하고 근사해보이진 않지만 적당히 쓰기 편하고 차분한 분위기의 대시보드 레이아웃.

재규어 F타입 스포츠카까지 공용하는 스포티한 3스포크 스티어링 휠. 감싸진 가죽의 질감은 좋지만, 평범한 플라스틱 리모콘 버튼의 질감은 기대 이하였습니다.

시인성이 좋은 12.3인치 풀스크린 TFT 계기반.

보통 차들의 파워윈도 스위치 자리에 메모리시트 버튼을 넣고, 파워윈도 스위치는 도어 제일 윗단에 올린 것은 랜드로버 SUV들과 공용하는 부분입니다.

전반적인 소재 질감은 7천만원~1억원대의 고급 브랜드 SUV라고는 전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의외의 실망감을 안겨줍니다. 재규어라면 오랜 역사를 걸쳐 고급차를 만들어본 역사가 있고 XJ같은 차에선 그 실력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는데, F-페이스에서는 일부러 힘을 빼고 만든듯한 한없이 평이한 소재질감에 놀라게 됩니다.


화장등 조명 부재, 시트벨트 높이조절장치 부재.. 아반떼도 이런거 다 달고 나오는 시대에 참..

10.2인치 와이드 AVN 터치스크린 모니터. 다른 재규어랜드로버 차들과도 공용하기에 무리없이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시승차만의 특이상태일까 모르겠지만 내비게이션 맵이 설치되지 않았다 하여 내비를 쓸 수 없었던 점이 아쉬웠습니다. 사진상에선 아이폰6S 블루투스 연결 후 멜론 스트리밍 재생 시 한글음원명을 정상 표시하는 상태입니다. 아랫단의 공조는 레인지로버 벨라와 달리 물리버튼으로 컨트롤 가능하게 마련되어 있습니다. 듀얼존 풀오토에어컨의 희망표시온도가 양쪽에 상시 표기되어 쓰기 매우 좋았습니다.

수입차들은 유독 통풍시트에 인색한데 F-페이스 35t 시승차에서는 기본 탑재되어 있어, 더워지기 시작한 요즘 날씨에 매우 요긴했습니다. 터치스크린 모니터에서 찾아들어가야 하기에 별도의 안내 없이는 자칫 못 찾을 수도 있고, 우렁찬 팬(fan) 소리에 비해 시원함이 생각보다 덜했던 것이 조금 아쉽습니다.

시동을 켜면 스르륵 올라오는 다이얼형 기어레버는 일전에 레인지로버 벨라에서도 볼 수 있었고 다른 JLR 고급모델과도 공통적으로 적용됩니다. 암레스트 내부 USB포트가 들어가는 구성은 벨라와 비슷하나, 열리는 방식은 벨라보다는 평범합니다.

양쪽으로 멀리 떨어진 ◀, ▶ 스위치로 이동 가능한 드라이브모드 셀렉트는 모드간 이동 모션이 너무 불편하고 어색합니다. 차라리 동생 E-페이스의 토글식 컨트롤러가 훨씬 직관적이고 쓰기 편합니다. 스마트키는 로고만 바꿨을뿐 랜드로버 계통과 공용합니다.

시트는 이렇게 덩치 큰 차에 소형차용을 갖다놓은건가? 하는 느낌이 듭니다. 제가 조금 마른 체격임에도 불구하고 시트 지지 느낌이 마지널하고, 앞,뒷좌석 공간 모두 도어패널과 광활한 갭이 바로 확인됩니다.



뒷자리 공간은 키 181cm의 필자 기준으로 크게 좁지도, 넓지도 않은 딱 적당한 수준. 시트 리클라이닝 기능이 없고 쿠션감이 너무 딱딱한 점이 아쉽습니다. 후열 에어벤트 밑에는 USB포트와 전원 공급용 시거잭 포트가 넉넉하게 마련되어 있습니다.


트렁크 공간은 레인지로버 벨라의 것과 비슷한 감상입니다. 높은 플로어 아래에 스페어타이어가 들어가 생각보다 넓진 못한 그때의 그 느낌.. 입체 패턴이 반복되는 논슬립 플로어 패드가 특이했습니다.


3. 성능/주행감각
솔직히 35t라는 이름에서 이 차의 배기량 및 성능을 유추하기는 이 차의 이름 "에프페이스"를 발음하는 것만큼이나 대단히 힘들었습니다. 3.5리터 터보(t) 내지 350마력 터보(t) 정도 될줄 알았는데 모든 예상을 깨고 3.0리터 V6 수퍼차저 340마력@6,500rpm, 45.9kg.m@4,500rpm 성능제원의 휘발유 엔진을 품고 있습니다. 최근에 바뀐 JLR식 네이밍 패턴대로라면 P340(Petrol + 340마력)으로 이름이 바뀌어야겠죠.
https://youtu.be/h6ySRbH9R3w
F-페이스는 자신만의 캐릭터가 정말 확실합니다. 생긴 것만 스포티하고 본성은 소프트한 SUV들이 많은데, 이 차는 왠만한 스포츠카 못지않게 화끈합니다. V6 3.0리터 수퍼차저 엔진은 자연흡기 엔진을 연상케 할 정도로 래그 없이 고회전까지 시원시원하게 올라가며, 버추얼 사운드 제너레이터가 없어 양념 쳐지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짜릿한 사운드를 선사합니다. 0-100km/h 가속은 6초 안쪽으로 대단히 재빠르며, y00 이후도 거뜬히 올라갑니다.

그리고 가장 압권은 SUV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하드한 서스펜션. 다이나믹모드에서의 승차감은 정말 왠만한 스포츠카 못잖게 스파르탄합니다. 고성능 스포츠카용으로 애용되는 비싼 서머타이어 피렐리 P제로를 순정타이어로 사용하여 그립도 좋고, 거듭된 급회전과 고속 코너링에서도 롤링이 최소화된 절도 있는 거동을 뽐냅니다. 8단 자동변속기의 재빠른 변속느낌도 훌륭합니다. 일전에, 레인지로버 벨라의 거동이 생각보다 독일차스러웠다고 평했는데, 재규어 F-페이스는 드라이빙 다이나믹스 측면에서 독일차보다도 더 독일차스럽다고 감히 말할 만합니다.
목동에서 파주를 오가는 130~140km 가량 주행을 거치는 동안 풀탱크 상태였던 F-페이스의 유류게이지는 반절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1.9톤의 차체를 340마력짜리 휘발유 V6 과급 엔진으로 이끄는 SUV인만큼 복합 공인연비 8.5km/L 수준은 어쩔 수 없는 일이겠죠. 하지만 연비야 그렇다치고 가장 큰 단점은 1억원에 달하는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ADAS 관련 옵션이 거의 전무한 것에 다름없다는 것. 장거리 크루징간 유용한 차선유지보조,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등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국산차에선 싼타페가 아니라 i30에서도 쉽게 옵션 추가가 가능한 것들인데, 재규어랜드로버가 기술이 없는 것도 아니고 단지 한국 판매사양에서만 제외하는 것이 뻔해보이는.. 좀 유감스러운 일이죠.


4. 가격 대비 가치
글을 작성하는 현재 기준으론 재규어코리아 홈페이지 견적메뉴에서 F-페이스 35t R스포츠를 찾아볼 수 없으나, 딜러분께 안내받은 이 차의 정가는 9천만원 후반대였습니다. 포르쉐 마칸S보다는 크고 저렴하며, 레인지로버 벨라보다는 소폭 작지만 실내에서 느껴지는 공간감 차이는 크지 않으며 가격은 더 저렴한 뭔가 애매한 위치입니다.
옵션 측면에서는 국내 수입차들이 대체로 박하다는 점을 감안해도 매우 불리합니다. AEB, ASCC, LDWS/LKAS, HUD, 어라운드뷰, 자동 파킹어시스트와 같은 주행보조장치는 전혀 없으며, 인테리어에도 다른 고급 브랜드에선 흔한 정교한 스티칭, 폭넓은 가죽감싸기, 고급스러운 버튼, 무드등같은 치장도 없이 한없이 평범하기만 합니다. 그냥 크루즈컨트롤과 전/후방 주차센서, 전동트렁크, 메르디안 로고가 선명한 17스피커 사운드 시스템 정도가 이 차에서 기억에 남는 편의사양의 전부. 누군가는 이정도 사양이면 충분하지 않느냐고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가격이 결코 저렴하지도 않은 차라는 점을 생각하면.. 디자인과 동력성능만으로 감싸주기엔 옵션사양 측면의 부족함이 많지 않나 생각됩니다.





고출력 휘발유 SUV를 겁내는 국내 소비층 취향상 사실상의 주력인 F-페이스 20d의 모습. 저도 사실 35t는 이날 시승차로 본게 처음이네요. 보시다시피 휠타이어가 작아지고, 범퍼 디자인과 머플러팁 구조도 달라집니다. 20d는 4기통 2.0리터 디젤인만큼 35t만큼 짜릿한 사운드와 가속성능을 기대할 순 없겠지만, 스포츠카스러운 하체 DNA가 얼마나 살아있을지도 궁금해지는 사양입니다.











5. 총평
재규어는 이미 알려져 있듯 럭셔리 SUV계의 세계적 명가인 랜드로버와 한솥밥을 먹고 있습니다. 그만큼 랜드로버의 SUV 노하우를 공유하여 SUV 제작에 쉽게 진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단점으론 SUV를 어떻게 잘 만들어도 브랜드 이미지상 랜드로버의 것을 넘기가 어렵습니다. 이러한 여건에서 F-페이스는 오랫동안 날렵한 승용세단과 스포츠카로 내공을 다져온 재규어 자신만의 DNA를 극대화한 SUV라는 방향을 지향점을 두고, 랜드로버 형제차인 레인지로버 벨라와의 완전한 캐릭터 차별을 이뤄냈습니다. 멋과 스포티함을 어필하는 SUV는 세상에 많지만, 하체부터 완연히 스포츠카같은 SUV는 흔치 않습니다. 그만큼 외모에 이끌려 F-페이스를 충동구매했다가 승차감에 피곤해하실 분들도 있겠지만, 고급스러움과 편의옵션엔 관심이 덜하면서 스포츠카에 대한 열망을 포기할 수 없는 SUV 소비자에겐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 아직 출시되지 않은 SVR같은 고성능 바리에이션이 나오면 어떨까 기대되기도 하고요.
장점 : F타입 못지않게 강인한 인상의 외모, 강렬한 사운드와 화끈한 성능의 V6 수퍼차저 휘발유 엔진, SUV의 편견을 깨게 하는 스포츠카스러운 하체 튜닝
단점 : 비싼 가격을 보상해주지 못하는 실망스러운 내장재 질감과 부실한 주행보조옵션, 취향에 따라 불편하게 느껴질 하드한 서스펜션
본 후기 글은 재규어랜드로버 아주네트웍스 강서목동전시장의 시승차량 지원으로 작성되었으며, 글 작성과 관련하여 해당사로부터 어떠한 금전적 대가도 제공받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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