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더운 6월에 다녀온 삼성교통박물관 관람 후기입니다. 용인 에버랜드 근교에 위치한 수도권의 몇 안되는 자동차 박물관인 삼성교통박물관은 지어진지 올해로써 20주년이나 된, 꽤 오래된 곳입니다. 저도 개관 초기 초등학생 시절 가본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었는데, 근래엔 어떤 모습일지 다녀와봤습니다. 영문 칭호 간판은 바뀌지 않은 채 한세기 전 감성을 풍기고 있습니다.







백남준의 "20세기를 위한 32대의 자동차" 작품이 야외 전시 중입니다. 은색 페인트로 박제된 20세기 올드카들이 연대별로 4그룹씩 배치되어 있습니다.


당시 부산모터쇼 벤츠 부스 대여를 위해 부재중이던 벤츠 3륜 특허차와 레오나르도 다빈치 태엽차 복원모델이 입구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지금 가면 아마 볼 수 있을듯..



1962 폭스바겐 카르만 기아 컨버터블. 이탈리아 카로체리아 기아(Ghia)에서 디자인을, 독일 코치빌더 카르만(Karmann)에서 제작을 맡은 쿠페/컨버터블입니다. 밑바탕은 평범한 폭스바겐 비틀이었으나, 미려한 스타일로 다시 태어난 카르만 기아는 전세계적인 사랑을 받아,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50년대 중반부터 70년대 중반까지 50만대에 가까운 판매실적을 냈습니다.




1957 캐딜락 엘도라도 브로엄. 스테인레스 스틸 루프로 하드탑 컨버터블스러운 느낌을 냈으며, 에어서스펜션, 전동 메모리시트 등 당대 최고의 편의옵션들을 집대성하여 당대 롤스로이스보다 비싼 판매가격을 자랑했습니다. 요즘에야 캐딜락이 롤스로이스보다 비싸다면 말이 안되는 소리지만 과거 20세기 중반 캐딜락의 입지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짐작케 합니다. 50년대 말 미국식 풍요로운 자동차 만듦의 극단을 달리는 대표 모델입니다.




1949 들라예(Delahaye) 178 컨버터블. 19세기 말 태어난 프랑스의 고급차 메이커였던 들라예의 고급 스포츠카로, 코치빌더들의 개성에 따른 다양한 바디타입이 존재했는데, 이 차는 사우트치크 카로체리아가 디자인한 컨버터블 모델입니다. 이것과 약간 다르게 생겼지만 빨간색 드롭헤드 쿠페 모델은 엘튼 존이 한때 소장했던 모델이기도 하죠.


뜬금없지만 갑자기 최신 모델인 2018 마세라티 그란투리스모. 마세라티 한국수입원 FMK의 협찬으로 전시한다는 문구가 안내패널에 크게 걸려있는데, 박물관 운영비 충당을 위해 이런식으로 최신 차들이 간간히 전시되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2007년에 첫 데뷔하여 아직까지도 판매되고 있으니 어찌보면 올드카인가 음..



V8 17리터 디젤엔진을 분해해 펼쳐놓은 조형전시품. 영국 브루클랜즈 메르세데스 센터에서 F1 머신을 이런식으로 통째로 분해 전시한 모형이 떠오르더군요.




1963 쉐보레 콜벳 스팅레이. C2로 불리우는 2세대 콜벳으로, 상어를 닮은 날렵하고 과감한 스타일링이 일품입니다. 숨어들어가는 헤드램프는 20세기 말 C5 콜벳까지 이어지는 고유의 아이덴티티가 되었으며, 패스트백형 리어 데크에 2분할로 만들어진 리어 글라스 역시 혁신적인 스타일을 자랑했습니다. 2분할 리어 글라스가 후방시야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1년만에 보통의 평범한 유리로 바뀌었는데, 그래서 C2 콜벳 스팅레이 중에서도 2분할 글라스의 초기 모델이 더욱 높은 가치를 평가받습니다.



1957 BMW 507. 북미에서 한참 유행이었던 벤츠 SL을 따라잡고자 BMW가 연 판매목표 수천대를 목표로 야심차게 내놓은 고급 로드스터였지만, 지나치게 높은 가격으로 외면받아 3년간 252대밖에 만들지 못하고 단종되었습니다. 2000년대 초 BMW Z8이 이 507을 모티프로 디자인되었는데, 오늘날 최신 BMW들의 뺨을 날릴 정도의 아름다움이 일품이죠. 507과 Z8 모두 근래에 가치가 재평가되어 소장용으로 나날이 중고값이 역주행 중입니다.




1934 쉐보레 마스터 스포츠 로드스터. 쿠페, 세단, 픽업트럭까지 다양한 변종으로 파생된 30~40년대 미국 스테디셀러 자동차입니다. 승하차를 어떻게 할 수 있을지 영 그림이 안 나오긴 합니다만 보통의 트렁크 자리에 의자같은 공간이 마련된 것이 특징.




1929 코드 L-29 컨버터블. 세계 최초의 전륜구동형 양산차로 알려진 시트로엥 트락숑 아방(Traction Avant)보다도 먼저 FF 방식으로 설계, 출시된 차입니다만, 20년대 말 미국 경기공황으로 인해 4,400대 남짓만 판매되고 단종되어 빛을 보지 못한 차입니다. 직렬 8기통 4.9리터 엔진을 탑재했습니다.


1988 팬더 칼리스타. 영국의 소규모 카메이커 팬더가 만들던 클래식풍 로드스터 차종으로, 쌍용자동차가 팬더社를 인수한 후 평택공장에서 국내에 생산, 판매하기도 했습니다. 당대에도 비싼 판매가격 때문에 100대도 채 생산되지 못했고, 국내에 잔존 중인 개체수는 10여대밖에 되지 않습니다.


아까의 뜬금없는 최신 마세라티 그란투리스모와 비슷한 이유로 협찬 전시중인 2018 메르세데스-AMG GT S. 용인 스피드웨이와 메르세데스-AMG가 근래에 제휴협약 관계에 있기도 하죠.



1981~1983 드로리언 DMC-12. 2도어 걸윙 도어 쿠페형 바디에 스테인리스 스틸 무도색 외장, 70년대 주지아로풍의 날렵한 디자인이 매우 근사했으나 경영가 자질이 부족한 창업주와 조악한 품질관리로 인해 몇대 팔아보지도 못하고 회사가 통째로 망하게 됩니다. 영화 백투더 퓨처의 타임머신 자동차로 유명세를 떨쳐 오늘날에는 전세계적으로 워낙 유명한 차입니다만, 이 차가 유명해진 시점은 드로리언이 이미 망하고 난 뒤라는 아이러니한 사실.


실내에서는 테마별로 다양한 차들을 전시하고 있는데, 국산차의 역사를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1955~1963 시발자동차. 6.25 전쟁 이후 한국에 버려진 미군 지프를 바탕으로 만든 자동차입니다. 외판은 드럼통을 두들겨 펴 만들고, 군용 텐트와 짚, 용수철을 재활용해 만든 시트를 얹는 등 그때그때 수급 가능한 재생 소재로 만든 차였지만 엔진 일부의 국산화에 성공하여 국내 기술의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현존하는 오리지널 시발자동차는 단 한대도 없으며, 일부 복각 모델이 존재 중인데 삼성교통박물관이 소장중인 이 모델이 창업주 일가 후손들의 고증을 거친 차로 가장 원형에 가깝다고 합니다.

1967 신진 퍼블리카. 토요타 퍼블리카 P20 모델을 조립 생산한 차로, 1971년 단종되기까지 2,005대가 생산되었습니다. 워낙 작은 차다보니 세단도 2도어인 점이 특징.

1969 기아마스터 T-600 삼륜트럭. 일본 동양공업(현 마즈다)과의 기술제휴로 생산한 삼륜트럭으로, 360cc 엔진에 300kg 적재량을 가진 K-360이 먼저 출시되고, 600cc 엔진에 500kg 적재량을 가진 위의 T-600이 뒤이어 출시되었습니다. T-600 모델은 보배드림에 10억원의 판매가에 매물로 올라와 이슈가 되기도 했죠.



1982 현대 포니. 국내 최초로 등장한 고유개발 모델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차죠. 섀시는 미츠비시로부터 이전받았지만 수출시장을 고려해 랜서 세단 바탕모델을 해치백으로 변형하였고, 외산차를 그대로 들여다 찍어내기만 바빴던 해외 의존적인 한국 자동차산업 역사를 생각하면 대단히 혁신적인 존재였습니다. 국내 최초 고유개발 모델이라는 점에서 포니는 전국민적인 자부심의 상징이 되었고, 끊임없는 기술자립을 시도한 현대차그룹은 세계 5위권까지 급속 성장을 일궈냈습니다.



1977 새한 제미니. 오펠 카데트C의 이스즈 개량모델(제미니)을 새한자동차가 한국에 맞게 변형 생산한 차종입니다. 유럽 오펠 스타일이 녹아있는 세단형 바디는 외형상으로는 한국 소비자들 입맛에 더 잘 어울렸으나, 2년 앞서 국내 최초 고유개발 모델로써 출시된 현대 포니가 이미 대세가 되었던 상황. 제미니는 포니보다 비싸고 연비와 품질 모두 나빠 빠르게 도태되었습니다. 맥스라는 이름의 제미니 픽업트럭 파생차는 심지어 존재 사실을 모르는 분들도 많죠. 포니의 누적 판매고가 29만7천대 가량인데, 제미니는 19,000대도 채 되지 않습니다.

1992 쌍용 코란도. 미국 카이저 지프(CJ-5)의 라이센스 생산 모델이었던 이 차는 여러가지 역사적 배경에 의해 지프라는 이름 사용이 불가능해져 1983년 코란도라는 자체 차명 브랜드가 나왔습니다. 바디타입의 형태는 과거의 지프 라이센스 생산차와 완전히 달라졌지만 이름만은 지금까지 장수하고 있죠.

1992 기아 프라이드. 자동차산업 합리화조치 때문에 브리사 이래 6년간 국내 승용차 판매를 금지당했던 기아차가 1987년 오래간만에 내세운 승용차입니다. 일본 마즈다 설계, 한국 기아차 생산, 미국 포드 판매라는 3국 합작 월드카로 기획된 프라이드는 합리적인 소형차로 국내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해치백, 왜건, 밴, 왜건, 세단, 캔버스톱 등 다양한 변종을 파생했는데, 최초로 출시된 모델이자 대표 모델은 역시 사진 속의 3도어죠. 해외에서는 후속모델로, 한국에서는 상위형 고급모델로 아벨라가 출시되었으나, 초대 프라이드의 인기가 워낙 대단해 2000년까지 이 오래된 모델로 장수하였습니다.


삼성자동차가 창사 첫번째로 생산한 SM525V. 삼성교통박물관이라 그런지 이런 차도 전시하는군요. 닛산 세피로 중형차를 한국화한 이 차는 4기통 모델은 쏘나타급, 6기통 모델은 그랜저급에 대응하여 경쟁이 침체된 90년대 말 중형차 시장에서 훌륭한 내구품질로 인기가 대단했습니다. 요즘은 SM6 아래의 저가형 판매차로 격하되어 빛이 좀 바란 느낌이 있습니다만은..
다음 포스팅에선 삼성교통박물관의 다른 역사 테마의 전시차들을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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