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는 암에 걸려 죽어가는 고등학교 화학선생 월터 화이트가 가족을 위해 마약을 만들어 팔기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시청등급 따위 안중에도 없을 정도로 익스트림한 소재와 표현을 마다않는 HBO조차 거절한 플롯을 AMC가 받아들여 제작, 방영이 시작된 브레이킹 배드는 시청자들에게 스크린상으로 마약을 투여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광팬들을 많이 만들어내며 인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브레이킹 배드는 스폰서와 무관하게 인물의 특성에 맞는 자동차를 직접 구해다가 출연시키는 점도 깨알같은데요,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주인공들의 자동차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1986 플리트우드 바운더 "RV"
브레이킹 배드의 상징과도 같은 대형 캠핑카입니다. 아무도 보지 못할 곳에서 마약을 만들기 위해 월터가 있는 돈을 전부 끌어모아 날라리 제자 제시에게 7천 달러를 주면서 차를 구해오라고 하여 구한 낡은 RV차로, 이동식 마약제조차로 사용됩니다. 워낙에 낡아빠져서 제대로 시동도 안 걸리는 등 말썽도 많이 피우곤 했지만 마약을 만들어 팔면서 엄청난 돈을 만질 수 있게 해준 장본인입니다. 시즌3 초반부에 이 차를 구하게 된 경로에 대해 비하인드 스토리가 나옵니다.


2. 2004 폰티액 아즈텍
제 블로그에서도 몇 번 다뤘던 희대의 디자인 실패작 아즈텍입니다. 아즈텍은 SUV, 왜건을 섞어놓은 전혀 새로운 장르의 차로 X세대에 어필하겠다며 나온 차였지만, 판매량 참패로 지금은 중고차 가격도 안 나오는 똥차가 되었습니다. 주인공 월터 화이트가 끄는 아즈텍은 특히 촌스러운 외관 색상이며 뒤에는 사이즈도 안 맞는 스페어 타이어가 끼워져 있어 더욱 안구의 습기를 유발합니다. 월터의 어려운 경제적 형편을 대변하는 차입니다. 마약 제조로 돈을 꽤 크게 만질 수 있게 되면서도 자신이 죽고난 뒤의 여유분까지 벌어놓아야 한다는 이유와, 갑자기 새 차를 사면 주위에서 의심을 할 수 있다는 이유로 각종 사고에도 불구하고 이 차를 계속 고집하였으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카액션 씬도 한 차례 소화해냈습니다.


3. 1982 쉐보레 몬테 카를로
월터의 학교 제자였지만 월터의 설득으로 마약 제조 파트너로 일하게 되는 제시 핑크맨의 차입니다. 지금은 대가 끊어졌지만, 몬테 카를로는 쉐보레에서 70년대부터 생산된 전형적 미국 스타일의 퍼스널 럭셔리 쿠페입니다. 드라마의 배경이 된 2000년대 후반에야 헐값의 차로 내려앉았지만, 특유의 분위기 때문에 좀 논다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고도 합니다. 제시의 빨간 몬테 카를로 쿠페는 차값보다 더 큰 돈을 주고 장착한 에어 서스펜션 덕에 미국 힙합 뮤직비디오 속 차처럼 덩실덩실 뛸 수 있는 재주가 있어서, 마약과 유흥에 빠진 양아치 제시의 성격을 대변하는 차입니다. 극중에서는 89년식이라는 묘사가 나왔지만, 외형은 80년대 초반 모델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4. 1989 지프 왜고니어
월터의 부인 스카일러 화이트가 모는 차입니다. 1963년 등장 이래 28년간 그리 큰 변화 없이 계속 판매되어 단일 모델로는 미국에서 세번째로 오래 장수한 차입니다. 특유의 사이드 우드 패널이 도드라지는 스카일러의 왜고니어도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월터 화이트 가족의 상황을 대변합니다. 월터가 마약으로 거액을 만지다가 훗날 충동적으로 차를 바꿨지만서도 스카일러는 남들의 눈을 의식해 차를 계속 바꾸지 않았습니다. 재미있게도 왜고니어의 계보를 따라가다보면 자기 동생의 남편이 끌고 다니는 차 지프 커맨더로 이어집니다.

5. 2006 크라이슬러 PT 크루저
월터의 아들 월터 주니어가 16세에 면허를 딴 기념으로 선물받은 첫 차입니다. 레트로 스타일의 소형 5도어 해치백으로 나온 PT


6. 2006 지프 커맨더
월터의 처남인 행크 슈레이더의 지프 커맨더입니다. 등장 인물 중 가장 최신 연식의 차를 타는게 아닌가 싶은데요, 특유의 탄탄하고 남성스러운 분위기는 행크의 마초적인 직업적 성격을 대변합니다. DEA(마약단속국)에서 근무하는 다른 대원들도 대부분 이 차를 이용하는데다가, 이 차는 유독 총격에 많이 휘말렸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새 차로 교체되어 다시 나타나는 것을 보아 업무용으로 나오는 차가 아닐까 싶습니다.

7. 2006 폭스바겐 뉴 비틀
행크의 와이프이자 스카일러의 동생인 마리의 차입니다. 도벽이 있고 유독 보라색으로 모든 것을 꾸미기를 좋아하는 괴짜같은 성격으로 나오는 인물인데, 차도 꾸미기를 좋아하는 성격답게 뉴 비틀을 끌고다닙니다.

8. 1998 볼보 V70
중반 시즌에 등장하는 주인공 거스 프링의 차입니다. 겉보기에는 치킨가게 체인점을 운영하는 평범한 사업가로 나옵니다만 많은 비밀을 안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보다 훨씬 비싸고 좋은 차를 끌만한 재력인데다, 딸린 가족이 많은 것도 아닌 사람이 굳이 가족적인 볼보 왜건을 몰 이유가 없습니다만 남들에게 자기 본래 정체를 숨기기 위한 치밀한 설정입니다.



9. 1988 크라이슬러 핍스 애버뉴(Fifth Avenue)
20세기 후반 전형적 미국차의 분위기를 풍기는 이 차는 거스 프링의 수하인인 마이크 에르만트라우트의 차로 등장합니다. 곡선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각진 디테일에 루프 뒷쪽의 가죽 마감은 당시 대형 미국차들의 특징입니다. 지금은 이빨이 많이 빠졌지만 80년대 미국인의 힘과 재력을 상징했던 이 차는 손녀가 있는 늙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의뢰를 깔끔히 처리하는 역할의 마이크에게 잘 어울리는 차입니다.


10. 2006 캐딜락 DTS
중간에 이런 신형 차도 한번 끌고나왔습니다만 임무 완수 후 본래 자기 차로 돌아옵니다.


11. 1997 캐딜락 드빌
돈만 많이 준다면 어떤 더러운 일도 마다않는 삼류 변호사 사울 굿맨의 차로 나오는 캐딜락 드빌입니다. 의뢰비만 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허풍쟁이 성격답게 약간 오래된 연식의 대형 캐딜락 세단을 끌고다닙니다. 우리나라 몇몇 '업자'들이 허세용으로 구형 에쿠스나 다이너스티를 끌고다니는 느낌이랄까요..


중간중간 조연으로 나오는 마약 관련 조폭들은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벤츠 CLS 등과 같은 차를 끌고 나와 분위기를 더했으며,


국산차로는 기아 세도나(카니발)이 한 차례 출연했습니다. 마약단속국 대원들이 탔던 차로 나왔는데, 왜이렇게 안 어울리는지;
[#ALLBLET|150165#]


1986 토요타 터셀 4WD 왜건
총알 세례를 맞고 경찰 조사를 위해 끌려간 故 몬테 카를로를 대신해 제시의 발이 된 낡은 토요타입니다. 당시 없는 형편에 간신히 싼 값에 주워온 똥차로, 전에 타던 블링블링한 몬테 카를로랑 완전 딴판의 차입니다. 날라리 생활 청산하고 이제부터는 정신차리고 살겠다는 의지가 보이기도 합니다. 중간에 돈을 물 쓰듯 쓰는 방황을 여러 차례 하면서도 차는 끝내 바꾸지 않았습니다.

2012 닷지 챌린저 SRT-8
2012 크라이슬러 300 SRT-8
남들 시선을 의식해 늘 똥차 아즈텍을 고집하던 월터가 사고로 아즈텍을 거하게 부셔놓고 수리를 했지만, 마음이 바뀌어 차를 가져오지 않고 새 차를 뽑아버렸습니다. 그것도 아들녀석이 늘 갖고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챌린저까지 세트로 말입니다. 처음 사준 중고 노멀 챌린저와 달리 새 차는 고가의 고성능 버전인 SRT-8로 뽑아 왔습니다. 검은색 300 SRT-8을 타니 이제야 마약왕다운 분위기가 나는 것 같습니다.


2009 토요타 야리스
중간에 납치를 당했다가 풀려나와 잠시동안 탄 토요타 야리스. 차를 구하게 된 경위에 대해서는 묘사가 되지 않았으며, 한 화가 끝나고 바로 차가 바뀝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