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상반기 출시되어 전작대비 훨씬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중인 쉐보레 올뉴 말리부입니다. 수년간 정체되어있던 국내 중형차 시장 판도를 흔들며 기대주로 떠오르고 있는 르노삼성 SM6와 쉐보레 올뉴말리부 중 키를 잡아볼 기회가 말리부 쪽에 먼저 와서 5시간을 유상 대여해 주행해보았습니다. 점심시간을 아껴가며 와인딩길, 고속도로, 시내 등 복합적인 환경에서 두루 체험해보았습니다.





1. 외형
보수적인 3박스형 바디를 가졌던 전작과 달리 신형 말리부는 동급 경쟁차들과 유사하게 미끈한 6윈도의 패스트백풍 바디 디자인을 내세웁니다. 좌우로 넓게 벌어진듯한 인상을 보이는 프론트 디자인은 훨씬 세련되어졌지만, 약간 붕 떠보이고 싹둑 잘려보이는 리어는 묘하게 취향을 타는 것 같습니다. 사실 넓은 휠하우스 대비 16인치 휠타이어가 너무 작아보여서 자세가 조금 약해보입니다. 19인치 풀옵션 사양에서는 확실히 자세가 나온다는거.. 다만 순정휠 라인업이 16,17, 19인치 딱 세종류뿐이어서, 승차감과 연비를 감안해 18인치 정도로 타협 보려 해도 사제휠을 가야 하는 단점이.. 구형 말리부 휠이랑 제원이 같으면 다행이겠지만;

옆구리에 레터링을 박아넣으니 뭔가 미국 본토 GM차스러운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이 차는 부평산이라는거..

디자인적 측면에서 의외로 기교를 부린 티가 여기저기서 많이 느껴집니다. 루프 끝에 붙은 스포일러 일체형 보조등이라든가..

2. 인테리어
브라운 톤으로 내장재와 가죽에 컬러를 입힌 실내는 첫눈에 보면 꽤나 고급스럽습니다. 기본형부터 7인치 마이링크 인포테인먼트가 들어가기에 오디오 조작부 버튼이 많이 간소화되어 깔끔해보입니다.

하지만 마이링크 화면을 감싸는 검정 플라스틱 내장재는 싼티가 줄줄 흐릅니다. 제 아반떼 내장재도 플라스틱이 많긴 하지만 적어도 지문으로 얼룩이 남지는 않는 소재인데, 저런 싸구려 플라스틱은 경차 이상급에선 처음 보는듯합니다. 게다가 보통 화면이 있으면 내비게이션도 같이 있을 것이라 기대하기 마련인데, 내비게이션은 2863만원짜리 LT디럭스팩에서 패키지 옵션을 넣는 형태로만 추가가 가능합니다. 브링고 앱을 깔아서 스마트폰 연동으로 내비를 쓸 수는 있다고는 하는데, 쉐보레 영업사원도 욕먹을까봐 서비스로 사제내비 무조건 끼워주고 시작한다는 지옥의 브링고..;

정말 근성있게 고집하는 버튼식 기어 +/- 버튼. D에만 놓고 수동으로 기어단수를 안움직이는 운전자는 애초에 불편함을 못 느끼니까 상관없다고 하는게 GM 공식 입장이지만, 제 취향은 아닙니다. 제에발 좀 바꿔줬으면..

앙상한 우레탄 재질에 뻥버튼으로 인해 몹시 가난한 깡통트림용 핸들. 미니쿠퍼 깡통용 완전 무버튼 핸들과 달리 뭐라도 기능이 있기는 하지만 미니는 적어도 가죽은 씌워줘서 촉감은 좋았는데, 까끌까끌한 재질의 말리부 우레탄 핸들은 정말이지 으으.. 볼륨조절, 곡넘기기 버튼은 패들시프터마냥 핸들 뒤에 붙어 있습니다. 가죽핸들과 크루즈컨트롤이 달리는 상위트림을 가도록 합시다. 제 쥐돌이처럼 싼값에 개조가 될지 어쩔지는 모르겠지만..

시동을 걸면 계기판의 모든 바늘이 매애애애우 느린 속도로 최고영역을 치고 내려오는 세리머니를 보여줍니다. RPM계 내에 엔진 오토 스타트-스톱 모드를 따로 표시해주는 것이 특이하네요.

플라스틱은 좀 싼티 나지만, 브라운 투톤 인조가죽 장식이 시각적으로는 고급스러워보입니다.

이전 말리부의 불만사항들을 많이 개선한 뒷자리. 레그룸 및 헤드룸이 여유로워졌으며, 뒷자리 에어벤트 및 암레스트가 기본탑재됩니다. 뒷자리에 앉으면 머리가 천장에, 다리가 시트백에 바싹 닿는 SM6 대비 훨씬 거주성이 좋습니다. 깔게 없어보이는 뒷자리에서 유일한 불만으로 풀옵션을 가도 2열 열선을 탑재할수 없는 점이었는데, 출시 3개월만에 이뤄진 연식변경 모델부터 최상위급 한정으로 열선시트를 달 수 있습니다.

국산 세단형 차들에서 보기 힘든 2열 시트 접이기능을 말리부는 기본모델부터 탑재해주고 있습니다. 애초부터 말리부의 트렁크가 넓은 편이긴 하지만, 트렁크에서 레버 하나만 당기면 간단히 시트를 접어 자전거나 긴 물건 등을 편리하게 적재할 수 있다는 점은 보너스죠.


다만 미국 스타일의 투박한 차 만듦새가 한국 소비자들에겐 다소 성의없어보이게 느껴질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트렁크에 이렇게 생철판이 앙상하게 드러나있다거나.. 어이없는 수준의 단차가 구석구석 드러나 있다거나.. 나중에 엔진룸 사진도 올리겠지만 국내 중형 경쟁차 중 유일하게 가스식 후드리프터가 없습니다.

실내등은 앞쪽만 LED고 뒤는 그냥 누런 알전구입니다. 아반떼AD의 실내등 알전구를 애프터마켓 LED전구로 바꾼 제가 이거 가지고 욕할 처지냐고 뭐라 하실 수 있겠는데, 말리부의 후열 실내등엔 온/오프 버튼이 없어서 켜고 싶으면 1열에서 조작해줘야 합니다 이뭐X..

선셰이드 화장거울에도 조명이 없습니다. 거울 커버만 밀어올려도 조명이 켜져줘야하는거 아니냐고 아반떼AD에 소소한 불만을 가졌던것을ㅋㅋㅋㅋ 반성합니닼ㅋㅋㅋ 글로브박스 조명도 당연히 없음.



3. 성능/주행감각
일부 디버프 사양적용이 있다지만 엔진 자체는 북미형과 동일하게 쓰다보니, 1.5리터 4기통 터보엔진, 2.0리터 4기통 터보엔진으로 국내 중형차 중 유일하게 과급기 엔진으로만 라인업을 구성한 중형차가 되었습니다. 이 중 1.5리터 터보엔진 사양이 국내시장의 주력입니다. 배기량은 작지만 이전 북미형 말리부 2.5 N/A의 대체용이라서 구 말리부 2.0 대비 훨씬 여유롭습니다. 배기량별 세제에 맞춘다고 북미에서 쓰지도 않는 허약한 휘발유 엔진을 주력으로 삼았던 구형 말리부와 달리 신형 말리부 1.5 터보는 최대출력 160마력으로, 국내 2.0리터 N/A 중형차들에 결코 뒤쳐지지 않는 준수한 성능을 뽐냅니다. 또한 전술했듯이 오토 스타트-스톱(이하 ISG)가 기본탑재되는데, 휘발유 엔진이라 그런지 자동 온/오프에 따른 이질감이 최소화되어 있어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다만 잦은 정차-출발 상황이나 주차 상황에 필요한 ISG 일시 강제해제 버튼이 없는 것은 단점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임팔라 2.5에도 안 달려 있어서 오너들이 의아해하던데, 이것 역시 변속기 버튼처럼 GM의 이상한 고집이 아닐까 싶습니다.

국내 여러 자동차 미디어들은 신형 말리부의 전반적인 주행감각을 칭찬하는 분위기지만, 미디어들에 제공되는 시승차들은 대개 풀옵션이죠. 비교시승기를 쓴다고 16인치 휠타이어 달린 기본형 쏘나타 렌트카를 빌려와 제물로 삼은 매체들도 있던데, 그에 맞춰서 말리부를 기본형으로 준비해서 비교했다면 말리부가 필패했을 것이라 자신합니다. 말리부 기본형의 205/65 R16 파이어스톤 FT140 타이어는 정말이지 쓰레기같았습니다. 정속주행간엔 어마어마한 노이즈를 유입시키고, 범프에서는 온몸이 탱탱볼 튀겨지듯 불안하게 비트치게 만들며, 코너링에선 50%의 페이스로 밀어붙여도 비명을 지르며 자세를 흐트립니다. 심지어 급제동 상황에선 타이어가 벗겨져나갈 것 같은 불안감을 안기며 제동거리가 늘어나는데, 레이EV의 친환경 타이어 이후 처음 느껴본 현상입니다.

미국 타이어랙 닷컴의 댓글창에서도 여러 소비자들이 파이어스톤 FT140 타이어의 불만을 표하고 있는데요, 어떻게 이런 저질 타이어가 순정타이어로 발탁되었는지 의문스러운 지경입니다. 흔한 국산 중~고급 타이어 정도만 끼워져 있어도 말리부에 대한 제 감상은 보다 호감으로 남았을 것입니다. 기본형 말리부를 구입하실 분들은 필히 휠타이어를 업그레이드하시거나, 트림 자체를 높혀서 출고하시기 바랍니다.
저질 순정타이어 때문에 한계성능을 제대로 느껴보지 못했지만 중형차 소비자들을 매혹할만한 요소들은 여럿 있었습니다. 전자식 파워스티어링은 쏘나타/K5의 것보다 묵직하면서 정교함이 한단계 위였고, x70 이상의 고속영역 안심감도 제법입니다. 6단 AT도 구 말리부에서 문제가 된 변속지연이나 울컥임이 말끔하게 해소되어, 보령미션의 오명을 씻어내립니다. 버튼식 변속 오르내림 방식만 빨리 바뀌면 특별한 지적의 여지가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고속도로 주행간 하부에서 돌 튀는 소리가 여과 안 되는 모습, 고RPM으로 밀어붙일 수록 엔진소리가 이상할 정도로 시끄럽게 유입되는 것을 보면 이 차의 NVH 대책 수준이 의심되게 만듭니다. 동승했던 친구도 지적했지만 고RPM 엔진노이즈 유입은 제 아반떼AD보다도 형편없습니다. 트림마다 방음대책 수준에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제가 탔던 카셰어링 차만의 문제일텐데, 후자이길 바라야겠죠. 안그래도 카탈로그에도 없던 가죽시트가 기본탑재된게 의문스러웠기 때문에..

4. 연비
시승차를 대여하자마자 기름을 잔뜩 채우고 반납 때까지 181km를 주행하고 기름을 다시 가득 채웠습니다.
트립 누적연비 : 9.6km/L
실제로 사용한 연료량과 주행거리를 가지고 계산한 실연비 : 10.4km/L (181/17.351)
말리부 1.5T 16/17인치 휠타이어 사양의 공인 복합연비 13.0km/L보다는 낮은 수치지만, 시승간의 악조건들을 감안하면 꽤 우수한 수준입니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트립연비 9.6km/L보다 실연비가 높았다는 것. 물론 유류게이지 바닥까지 떨어질 때까지 밟아본 뒤의 실연비는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최근 강화된 국토부 신연비 측정법 때문인지 국산차 메이커들의 트립연비 측정 로직이 자체적으로 꽤 가혹해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5. 가격 대비 가치
제가 탔던 시승차는 기본형의 LS트림. 말리부 최초 출시 이후 수개월만에 연식변경으로 별다른 사양 추가 없이 값이 78만원이나 올라 쏘나타 기본형(2255만원)과의 가격차이가 많이 벌어졌지만 SM6 기본형(2420만원) 대비로는 여전히 저렴하며, 7인치 마이링크+카플레이 스크린, EPB 등의 매력적인 기본사양을 무기로 합니다. 하지만 1800만원대의 아반떼에도 기본 탑재된 1열 열선시트가 무려 2863만원짜리 LT디럭스까지 올라가야만 탑재 가능하며, LT디럭스에 순정 내비게이션팩, 19인치 휠타이어 옵션만 추가해도 3019만원으로 솟아오릅니다. LTZ도 아닌 LT디럭스에서 벌써 3천만원이 넘는데, EPB만 포기하면 2700만원을 훨씬 밑도는 값에 비슷한 사양의 쏘나타 2.0을 뽑을 수 있습니다. 여기저기서 후열 열선의 부재를 지적하자 이번 연식변경때 추가했는데, 가장 비싼 LTZ에서만 기본탑재하고 그 이하 트림에선 선택권도 안 주는 것을 보면 역시 저동네는 잘 나가다도 차 팔기 싫다는 본심을 금새 드러내는 것 같단 말이죠.

의문점으로는 LS는 가격표상 분명히 회색 직물시트가 기본이라고 하는데 제가 탔던 LS는 브라운 가죽시트가 적용되어 있었습니다. 카셰어링이나 렌트카 납품용 트림이 따로 있는게 아닐까 의심됩니다.



6. 총평
말리부는 이전 세대와 달리 현대기아 중형차 라인업에 질린 사람들을 위한 확실한 대안으로 떠올랐다고 평가할 만 합니다. 처음엔 디자인과 고급스러운 내장 때문에 SM6에 끌렸지만, 이상하게 좁고 불편한 뒷자리, 시선이동을 많이 유발하고 터치 반응이 둔한 S링크 인포테인먼트의 단점을 체감해보니 "누가 타도 편하고 무난하다"라는 강점을 가진 현대기아의 중형차들을 정면돌파하기엔 말리부가 훨씬 낫다는 판단입니다. 16인치 저질 순정타이어 때문에 제대로 차를 느껴보지는 못했지만, 고인치의 좋은 타이어만 추가되면 빠른 명예회복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다만 출시 수개월만에 값을 슬쩍 올려버린다거나, 내비게이션, 열선시트같은 패밀리카 필수옵션을 중~상위 트림에 묶음옵션으로 몰아버리며 높은 가격지출을 유도하는 장사치 행태가 아쉽습니다. 가격에 대한 비판을 모르는 것이 아닐텐데도 말리부의 출고대기기간이 3개월씩 밀리는 것을 보면 애초에 그냥 생산캐파에 한계가 있는 것을 알고 있어서 일부러 수요조절을 하는 것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뭐 차 자체가 기대 이상으로 잘 나와서 경쟁차 대비 약간의 높은 가격과 긴 대기기간을 감수할 만한 가치는 있지만, 딱히 대단한 럭셔리카나 스포츠카도 아니고 그냥 패밀리세단이 필요한 소비자에게 있어 실리를 생각하자면 여전히 고민이 되는 선택지입니다.
본 후기 글은 순수하게 개인의 흥미로 작성한 글이며, 운행간에 발생한 모든 비용은 자비부담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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